천성산얼레지의 에베레스트 도전기

네팔 농촌마을에서 만난 삶의 희망

양산 작은 거인 2007. 5. 14. 10:43
 

 

 중국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낸 후 지프차를 타고 카투만두로 오는 길은 시원섭섭하다.

 고소적응 실패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가지 못한 통한이 있지만 고생 덜한 상태에서 빨리 내려온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마음까지 든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아니 나만 그런가?


 카투만두로 오기까지는 지리한 여정이 남아있었다.

 더운 바람과 매캐한 냄새, 고통의 연속이다.


 농촌마을 파스칼에서 차를 대고 운전사와 가이드 겸 셀파 밍마가 점심을 먹는다, 네팔식인데 밥과 카레 등 손으로만 익숙하게 먹는다.

 나는 도저히 못 먹고 콜라 한병으로 때웠다. 배가 고팠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이 하나가 지하칸 으슥한 헛간 같은 데서 공부를 하고 있다.

 짚단을 등에 대고 책상도 없이 무언가 열심이다.

 형설지공이란 이런 것이리라.

 헛기침을 하고 그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이름은?”“아리”“나이는?”“17살”

 중3인 내 아들 비슷한 또래이다.

 

  

궁핍함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아리.


  “무슨 공부하니?” “네팔어요”

노트을 뒤적여 보니 빼꼭하게 글이 적혀 있다.

꼭 인쇄 글씨체 같다. 몇 인칭을 가르키는 말인지 표도 그려져 있고.

숫자를 기록한 것 같은 표도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임에 틀림없다.


 차에 가서 노란볼펜을 하나 들고 와 그에게 주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를 했다.

 

 

노트에 빼곡히 적혀있는 아리의 글씨.


 그는 이 어려운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것 같았다.

 아리에게서 원망이나 실패란 없으리라. 나는 이 어린 소년에게서 네팔의 희망을, 지구의 희망을 확인했노라.

 이 이상 가슴 뿌듯한 여행이 어디 있으랴.


 

아리가 값싼 나의 동정심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해 반기문 UN 사무총장같은 훌륭한 인물이 되길 기원하다.


 카투만두로 오는 도중 네팔 아이들의 교육실태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유심히 살펴 봤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이 계속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한 마을에서는 3~4평 되는 교실에 허름한 흑판 하나에다 5~6명이 아이들이 글을 깨우치고 있었다.

 올망졸망한 눈빛들.


 스쳐가는 이 장면에서 나는 흑판을 짊어지며 다니며 공부를 가르치려는 교사와 아이들의 가슴 아린 얘기를 서정적으로 담은 이란영화  ‘칠판’을 선명하게 떠 올렸습니다.

  

 

 

 

이란영화 ‘칠판’의 포스터와 영화의 한 장면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 중에도 교육이 계속돼 오늘날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지 않은가?

                  

 

                                          

네팔학생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주춧돌이 되길….


 

 다 쓰러져 가는 학교건물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놀고 있습니다.

 학교 건물 앞 마당에 새건물을 짓는 인부들 보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저 솟구치는 강물처럼 학생들의 용기도 계속됐으면 합니다.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 아시안트레킹 툭텐 사장의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아 갔다가 공부하는 아이 장면에 또 놀랐습니다.

 5살 정도되는 여아이는 툭텐의 외손녀인데 혼자서 네팔말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안은 나 말고도 독일손님 10여명이 초대돼 있고 엄마는 음식준비로 바쁜데 아이 혼자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아이는 네팔 어린이 중 몇 안되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으니 복 받은 아이입니다. 그렇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듯 했습니다.


 왠지 나는 허름한 헛간에서 공부에 정신이 팔려있던 아리와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오버랩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