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소식

박희태 노욕이 제무덤 팠다

양산 작은 거인 2012. 1. 13. 11:52

 

박희태 老慾이 제무덤 팠다

~지역구 양산 민심 흉흉~

 

국가 서열 2위의 萬人之上 국회의장 박희태가 끝없이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한나라당 대표경선 돈봉투 파문이 확산일로에 있을 때 외국공식방문을 이유로 외유에 나선 박희태는 잠행을 거듭하며 최악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검찰․한나라당 비대위와 빅딜을 통해 현재의 직을 유지하고 싶겠지만 오는18일 귀국후 검찰출두가 예정돼 있다니

타국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겠지요.

 

요즘 박희태의 지역구인 경남 양산의 민심은 요동칠 수 밖에 없습니다. “믿었는데 당했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있지요.

 

 

 

지난4일 양산상공회의소 신년하례식 건배제의 박희태

 

지역 주간지 양산시민신문 10일자 1면 제목은 ‘위기의 남자, 박희태’

기사 시작은 ‘四面楚歌’로 박희태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남해 출신의 5선이던 박희태는 지난18대 총선 공천 탈락후 그해 한나라당 대표선거에서 친이계의 대타로 내세워져 대표에 취임한 不倒翁.

 

 

 

                             2008년 당대표 당선직후

 

그는 2009년10월 국회의원 재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반대하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해 겨우 내락을 받아 출마,노무현 전대통령의 측근인 야권의 송인배와 힘겨운 싸움 끝에 가까스로 당선됐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타이틀의 블로그를 올린 적이 있지요.

 

 

 

  박희태가 굴욕을 감수하면서 양산출마를 강행한 것은 오직하나 하반기 국회의장이 되려는 私慾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지요.

 

양산이 그를 택한 것은 정치거목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연일 박희태 돈봉투 사건 후속보도가 이어지면서 양산시민 자존심이 큰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양산시 출입기자 A씨는 “현상황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박희태는 짧은기간에 지역발전에 큰도움이 됐다”고 동정론을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의 老慾이 비극을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박희태는 하반기 의장이 된후 한나라당 당적을 이탈한 후에도 당원협의회장을 자기사람을 심으려하다 실패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정치사에 하반기 국회의장은 다음 총선에 출마한 전력이 없음에도 19대 총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습니다.

“해는 저문데 할 일이 많다”는 선문답만 계속했지요.

 

몇 달전부터 “젊은 양산토박이가 됐으면 좋겠다‘며 에드벌룬을 띄웠는데 그 해답이 윤영석 아시아도시연맹 이사장이었습니다.

 

     출판기념회장의 윤영석(맨오른쪽)

 

박희태는 지난10월20일 양산부산대병원 앞에 들어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남부분원 개소식에 참석한 후 한나라당 소속인 양산시장,도의원,시의원부부 만찬 자리서 윤영석 공개지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표 돈봉투 사건이 터져 시끄럽던 지난7일 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윤영석의 출판기념회에 참석,축사를 통해 윤영석 지지발언을 해 언론에서는 19대 총선 불출마로 해석,기사화가 됐지요.

 

 

 

 출판기념회장에 들어서는 박희태 일행

 

양산에서는 혼돈의 와중에도 박희태 의장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것은 어떤 사정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정치판 24년 경력의 그가 쉽게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요.

 

 윤영석 캠프에서는 박희태 지지선언이 세확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반겼으나 여권에 찍힌 박희태가 밀어주면 오히려 역효과라는 반론에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고승덕이 왜 박희태를 공격했느냐는 분석의 기사에서 ‘서초을 공천전쟁’이 주요원인임이 지적됐다. 박희태가 동향지자 먼친척인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을 밀자 고승덕이 반격을 했다는 것이지요.

 

양산에서는 서초을 이외에 양산의 윤영석의 공천요구도 박희태 낙마의 요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박희태와 윤영석 사이 가교역할은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보좌관이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실제 국회출입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한나라당 비대위가 원로인사들의 용토바람몰이를 위해 박희태 의장에게 압력을 넣었지만 오히려 2명의 공천권까지 요구하자 된서리를 맞게 됐다는 분석이 대세입니다.

 

양산에서는 2008년 전당대회에서 깊은역할을 한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까지 검찰수사선상에 오르는 등 칼날이 박희태를 향하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문까지 무성합니다.

 

수사가 2008년 당시에만 국한되면 다행이지만 측근인사 계좌까지 모조리 뒤지면 지역인사 정치권 인사 이름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습니다.

시중에서는 2000년 6․4 지방선거 공천권을 두고 시장공천권자가 뒤바뀌는 등 온갖 잡음이 무성한바 있습니다.

 

나이 74세. 6선 의원에 국회의장까지 지낸 그가 정치 마지막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면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한나라당에도 분명 책임이 있습니다.

18대 총선 탈락자를 친이계 핵심이라는 이유로 당대표로 내세웠지 않습니까. 더구나 그는 김영삼 정권 출범시 법무장관에 내정됐다가 딸의 대학부정입학 문제로 10일만에 낙마한 전력이 있지요.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인사를 당대표 ,국회의장까지 만들었으니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잘아시다시피 박희태는 이명박 대통령만들기의 이상득,최시중 등 6인 멤버의 한명입니다.

그러니 박근혜로서는 철천지 원수로 생각할게 뻔합니다. 어쩌면 그는 보복을 당한다는 억울한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의 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희태는 절절히 인생무상을 느끼고 있겠지요.

 

 마지막 사진하나.

 

 

 

 국회 본회장에서 졸고 있는 박희태 의장.

 폭탄주를 처음 고안했다는 그는 폭탄주 애호가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래서 건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요.

 

 이렇게 졸고 있을 게 아니라 명예롭게 정계은퇴를 선언했더라도 이런 치욕이 없었겠지요.

 인간은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워야합니다.